2019년 5월 8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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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모노 프렌즈, 1기와 2기의 이야기 구조 차이를 고찰해 보았다>
 
 
1. 케모노 프렌즈 1기와 2기의 이야기 측면에서의 차이
 
"2가 얼마나 좆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 할 만큼 한 상황이기 때문에'케모노 프렌즈 2가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안이한 마인드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는지""이야기에서 선악 대립의 계보" " 악역이 없는 이야기, ‘동물과 인간’ ‘복선을 회수하는 추세와'케모노 프렌즈 2 ' 라는 주제로 써보고 싶습니다.
 
 
우선 1 기와 2 기의 차이점을 보자면
 
 
1: 동물이 먼저다 2: 인간님 우선
 
1: 케모노는 있어도 노케모노는 없어 - 2 : 노케모노투성이
1: 아무도 서로 싸우지 않아 - 2 : 싸움질 투성이에 인성질까지
1: 성공적인 세계관 구축과 복선 회수 - 2 : 복선 같은 건 후속작에서 해결해주겠지
 
로 볼 수 있습니다.
 
 
차례대로 보자면 우선 1기는 인간과 짐승이 완전히 대등한 관계이며, 거기에 상하관계도
악의도 따돌림도 없이 친해질 수있는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후술합니다.
 
1기에는 어그로를 담당하는 악역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후술합니다.
그렇기에 창작의 측면에서 1기가 여러모로 참신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다면, 2기에서는 한 2~30년 전에나 유행했을 "안이하게 어그로 담당 악역을 적당히 하나 만들어 해결" 라는 창작의 트렌드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옛 시대로 퇴화한 듯한 데다가 참신하지도 않은 스토리텔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부분도 밑에서 자세히 설명할 예정입니다.
 
싸우지 않는다.’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세대차랑 관련 있음?’하고 물을 지도 모릅니다만
잘 보면 몇 세대 전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뭐만 하면 주먹부터 나가는 상황을 곧잘 접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겐 낯선 광경입니다. 왜냐하면 어지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없어졌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00년대 여캐들이 나와서 와글와글 수다 떠는 애니메이션(미소녀 동물원)이 유행하기도 했고, 90년대까지는 주먹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전개가
표준이었던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이것은 단순히 1기 제작진보다
2기 제작진아 한 세대 이상 윗세대이기 때문에 자기들 세대의 가치관으로
"싸우는 전개 정도는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인간적 성장을 못한다."등의 고정관념에 집착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복선 회수에 대해서도 후술하지만, 00년대 정도까지는
"이하 자세한 설명은 극장판(그러니까 안알랴줌)에서하면서 끝내는 방법이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에서 유행한 관계로, 시청자들에게는 상당히 악평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처음부터 극장판과 속편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예산이 빵빵하고 인기가 있는 작품이
줄어 들었으므로, 복선은 회수 해야 하는 게 당연하게 되어버렸지만요.
그러고 보니 10년전 애니메이션으로 "다음 내용은 극장판에서...' 하는 하나 있었지. BLOOD-C 라던가.
사실 2012년 작이기 때문에 아직 10년 안 되었음
 
제 기준에서 "안 좋아"라고 생각하는 부은, "많은 사람이 모여 놓고 방향성도 없이
필요한 논의도 충분히 겹치지 않고 쳐만들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는 부분입니다.
이거 아무리 봐도 모여서 제대로 머리로 생각하고 내서 말아먹은 결과가 아니잖아요 이거...
 
또한, "이것들 제대로 장사할 생각은 있는 건가" 라는 점.
애초에 '팔려야 해!'라고 생각한다면 최종회에 저딴 전개를 하진 않을 겁니다.
매출 내려가고 시청자는 분노, 게다가 등장 동물들 취급도 시원찮기 짝이 없으니
동물원 콜라보 이벤트 같은 측면에서도 마이너스니, 관계자들 전부를 시궁창에 집어던지는 대체 누가 이득인지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왜 더 팔리는 것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어?" 라고 빡치는 게 정상일 겁니다. 누군가가 "이런 걸 누가 돈 주고 삽니까?"라고 태클을 걸었어야 해요.
 
거기다 노골적으로 안이하게 날로 먹으려는 태도가 눈에 보여서 맘에 안 들었습니다.
"특전으로 인질 잡으면 팔린다."라든지 "게임 캐릭터의 DL코드 동봉!라든가
전작이 히트작이니 발로 만들어도 팔린다"라든지, 그런 안이함이 비쳐보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왠지 모두가 안 좋은 방향으로 안 좋게 구른 걸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는다.
 
이제 이야기, 시나리오적 측면으로 넘어갑니다.
 
2. 설명충 전개 없이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전개하는 법의 어려움
 
우선 이것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타츠키 감독의 가시 빼기가 들어간 각본과 1화 원 각본(요시자키 버전)의 차이를 설명한 글입니다.
 
이것 참 대단하군요. 역량 차이가 너무 심합니다.
 
원안의 경우, 보통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써 버릴 것 같은 시나리오 " 라고 생각합니다.
 
짐승이 인간을 보고 이상한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은 짐승을 보고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이 대립 사항은 2에서도 기본적으로 나타나지만, "보통의 반응"에서 생각이 더 나아가질 않고
대립하는 것의 착지점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켚2의 최종회를 봐도 분명합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그렇겠지요? 로 끈낼거면 애초에 이야기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시청자가 이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시나리오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조금조금씩 연마하고 장면을 좀 더한 것만으로 마법처럼
"킹갓시나리오" 가 탄생합니다.
 
일단, 원안은 무슨 설명충이 빙의한 것 같습니다.
 
2기 애니의 경우 전체적을호 이 "요시자키 버전'에 매우 가까운 형태 진행됩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대사가 설명충 빙의해서 새로운 프렌즈가 등장하거나
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누군가가 일일이 '설명'하기 때문에 대화가 부자연스럽고
맥이 빠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설명충 전개를 배제하면서 스토리를 진행시킬까?“에 대한 궁리는
실사 작품(영화, 드라마 등)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서도 끝없이 계속 연구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야기 도중에 뜬금없이 설명하기 시작하는 부자연스러운 캐릭터가 네타거리가 될 정도로 설명충 전개는 몰입감을 시궁창에 쳐박아 버리고 이야기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데 한몫 합니다다.
그렇기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어떤 식으로 재미있게 보여 주거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하는가? 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드라마도 그렇고 애니메이션, 만화도
부자연스러운 설명충을 아주 배제하지 못합니다.
 
타츠키 감독은 이 측면에 있어 아주 능숙합니다.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천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레벨입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설명충 없이 시청자들에게 내용을 이해시킬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사람는 극히 드물 것입니다.
 
또한 요시자키 버전은 "가시가 있네" 라고 할 만한 대사가 군데군데 나오는데,
가시가 있다기보다 떠나 보통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
부분에서도, 그걸 수정하는 타츠키 감독의 단어 선정과 감은 정말 이상한 레벨입니다.
 
이 시나리오(타츠키 수정본)의 경우 애니메이션 작가 양성소 교보재로 써도 손색이 없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말하겠지라고 그냥 넘겨버린다면 이런 갓시나리오는 쓸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있으면 꼭 1기와 2기를 각본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고 비교해 보면 좋을 겁니다. 아마도 ", 나라면
이렇게 써 버릴지도..." 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3. 작금의 이야기는 권선징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선악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은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케모노 프렌즈1'에서도
케무리쿠사'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실현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창작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점프에서 단순한 '권선징악' 에 의문을 나타낸 작품은 사실상 바람의 검심부터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충 30년 전 작품이군요. 건담에서도 "적도 인간이다"
라는 테마가 있습니다. 이것은 40년 정도 전 작품이네요.
 
마법 소녀 마도카마기카PSYCHO-PASS는 선악을 넘어선 '올바름'과 그 선택을 묻는 이야기 입니다. "반역의 이야기 "는 선(전체)에 대항하는 악(개체)라는 형태로 끝났습니다. 또한 Fate / Zero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고, Fate/SN '도 그렇습니다.
 
, 요즘의 트렌드 중 하나로, 그리고 세간의 풍조로 세상에는 알기 쉬운 선과 악이 있는 것은 아니다가 있는 것입니다.
테러리스트에겐 테러리스트 측의 정의가 있고 상대 쪽에서 보면 오히려 이쪽이
일지도 모른다, 정의와 정의가 서로 부딪히는 것이기 때문 끝나지 않는데, 이 경우 무엇이 더 올바른가? 라는 사회적 주제와 이야기 테마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방송중인 도로로도 원작과는 다른 동기와 테마를 보여주는데, 알기 쉬운 사리사욕의 문제에서 개인의 살고자 하는 의지와 전체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의 대립 사항" 으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역시 반역의 이야기와 같은
주제이며 트렌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케모노 프렌즈1은 그러한 측면에서 최신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는데 2에서는 반대로 테즈카 이전수준으로 퇴보해 버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악역, , 또는 노케모노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한 어려움
 
또한 "이야기에 악역을 만들지 않는다." 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권선징악 개념에서 벗어난 이야기에 악역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악역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다툼 및 주인공의 위기, 성장을 촉진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 악역이라는 개념은 참 편리 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 녀석을 해치우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주인공은 정의의 영웅이 될 수 있으며, 모두가
칭찬 해주고, 악에 맞서는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로
그리기도 쉽습니다.
 
이 문제에 고나해 계속 노력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는, ‘소녀혁명 우테나’, 돌아가는 핑드럼 , 유리쿠마 아라시를 보고 난 뒤 케무리쿠사를 보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라고 솔직히 생각했습니다.
뛰어 넘었어! 라고. ‘노케모노를 만들지 않는다.‘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선악 개념에서 벗어나고 적과 아군의 이분법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유리쿠마 아라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케모노 프렌즈'는 간단하게 해결합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그리 간단한 건 아닙니다만 말이죠.
 
반대로 에바 이전으로... 아니, 오히려 건담 이전까지 퇴보하고 있는 물건이 바로 '케모노 프렌즈2' 입니다. 시나리오, 이야기적 측면에서 엉망진창 역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케모프레2 '를 검토하면 '낡아빠진' 이야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사회의 갈등과 애니메이션의 트렌드마저 벗어나 버렸습니다.
 
나쁜 놈이 있으니 쳐부수며 해결하고, 다음은 그 녀석의 일 따위 잊은 듯
하하호호 그런 단순한 이야기는 최근 보이지조차 않는군요...
요즘은 프리큐어도 이런 전개는 안 써요.
 
같은 이유로 싸우게 하는 전개도 안이함의 산물입니다...
싸움이 벌어지면 분위기가, 그리고 시청자들이 충격을 받고, 화해하면서 말하는 "죄송합니다"에 감동하기 때문에. 아이인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거기서 굳이 또 이게 현실인 거에요' 를 넣으려다 말아먹은듯한 인상입니다. 애초에 요즘 아이들, 그런 전개 본다고 감동할 정도로 순진하지 않고...
 
'겨울 왕국'의 예로 들자면 원작에서는 악당 '여왕'이었던 캐릭터를 구하려 하는 이야기로 재해석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스 왕자 정도를 제외하면 '악당'이라 할만한 존재가 나오지도 않습는다. 이야기란 사회적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오래된 이야기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2의 경우는)적어도 30년 이상은 후퇴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제작자들 "이것이 현실인 거에요"를 무슨 만능 치트키 같은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예를 들면 죠죠의 기묘한 모험처럼 악이란 무엇인고,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것을 깊이 생각한 결과 나온 시나리오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군요.
 
 
 
 
5. 세계관과 설정을 빈틈없이 구축함으로써 설득력 있게 복선을 회수하는 것
 
복선 회수가 중요시되기 시작한 것은 애니메이션이 1쿨 대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 우로부치 겐'의 영향력도 크지 않을까? 라고 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컨대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이전과 이후 라는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쿨 밖에 없는데 장대한 세계관과 많은 복선을 제대로 회수 하면서 각각의 캐릭터와 드라마 까지 제대로 잡은 작품은 마마마가 거의 처음 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라고도 볼수 있다고 봅니다.
같은 해에 나온 작품으로 슈타인즈 게이트 도 있었지만, 그것은 2쿨짜리 애니였기도 하고 머말이죠. 핑드럼 "2쿨짜리 애니였죠.
 
1쿨이라는 분량은 시청자에게도 제작자에게도 짧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작품도 관객들에게 복선 회수할 순는 있는걸까? 하는 불안감을 갖게 하기 마련입니다.
회수 못한작품은 자주 봤습니다만 아예 할 생각이 없는작품(2)은 정말 오랜만에 봤습니다. 00년대 이후론 볼 수 없던 풍경이네요.
 
복선을 깨끗이 회수하려면 당연히 이야기와 세계관을 빈틈없이 확고하게
구축할 필요성이 존재합니다. 처음부터 여기 이런 세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당연히 저렇게 되기 마련이다.’라는 방식의 '세계관 컨셉을 중시하는 이야기' 도 최근 유행하고 있습니다, Fate/SN'가 대표적이겠군요. 이렁 방식은 세계관이나 설정이 딱딱 확립되어 있으니, 미디어 믹스 전개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다.
 
케모노 프렌즈1 기의 경우, '세계관과 설정'이 장악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과 사람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세계' 라는 매우 부 자연스러운 상황을
"원래 인간과 짐승이 사이 좋게 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원 이니까"
라는 SF 설정을 부여하는 것으로, 그런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설득력을 갖게 하고 사람은 사람으로, 짐승은 짐승의 상태로 인간에게 맞춰 주는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짐승도 억지로 맞춰주는 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물 그 자체로 인연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유리쿠마 아라시에서 저를 인간 여자로 만들어 주세요!'라는 대사가 있는데,
어느 쪽이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은 엄어가는 행위의 어려움을 그리지만, 타츠키 감독은 현실이나 이질성을=은 그대로 두고,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를 SF 요소를 이용해 구축합니다. 이렇게 하면 선악이나 결정적인 '다름'라고
꼭대기에 올라 버리는 것인가. 이렇게 하면 선악간의 이항대립 같은 문제에선 벗어날 수 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측면에서 굉장한 애로사항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선악이나 이항 대립구조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6. 설정을 체감할 수 있게 하여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게 만들기
 
 
타츠키 감독은 현실을 무시한 유토피아'를 만는 것은 아니다.
짐승이 짐승인 상태로도 사람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멋진 것이다. 적어도
'케모노 프렌즈'에서는 그렇다.
 
케무리쿠사에서는 자매끼리 서로 같은 감각을 가지지 않는다.
한 사람은 청력이 뛰어나고 또 한 사람은 시각이 뛰어나다는 느낌으로 각각 특화하고 있지만, 자신이 특화하고 있는 부분 이외는 감각이 매우 약하다고 묘사된다.
청력이 강하면 시각 등 다른 4 개는 약하다. 그래서 모두 서로의 감각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
 
사실 그런 게 정말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시각 외에 다른 감각이 거의 없었다면, 청각 외에 다른 감각이 거의 없었다면 다른 사람의 감각을을 알 수 있을까? 배려 할 수 있을까?
"왜 몰라주는거야!" 라고 혼자 화내기나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그러한 요소를 알기 쉽게 그리는 것 또한 어렵다. ‘청력 밖에 없다는 건 어떤
느낌? ‘이라고 해도 그걸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케무리쿠사에서는 제대로
시각이 약하다.‘ ’촉각이 약하다.‘라는 것을 가정한 상태에서 행동이나 대화를 묘사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악역 없이도 적과의 전투 요소를 넣고 주인공을 성장시키는부분도 "케무리쿠사에서는 실현하고 있다. 어디에도 나쁜 사람’,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간 나무우연히 지구에 와버린 인류에게 해로운 생명체라든가 사악한 과학자가 만들어 낸 무언가라든가 환경의 오염으로 인한 돌연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타츠키 감독은 달랐다.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악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와카바와의 교류, 리리의 기억을 통해 처음에는 단지 자신들을 위협하는''이었기에 수동적으로 싸워왔던 붉은 나무와 붉은 벌레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 "를 위해" 매듭을 짓는다」 「결착을 낸다는 결정을 아무런 대사나 직접적인 설명도없이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성장'의 연출도 훌륭하다.
 
틱틱대면서 시비나 걸고 그다지 성장하지도 않고 끝내 버린 케모노 프렌즈2'와는 대조적이다. 대체 그렇게 틱틱대면서 시비건 이유가 있는 거요?
 
2’의 글러먹은 점은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된다.‘는 정합성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서로 틱틱거린다거나 써운다던가 하는데, 정작 그것을 통해 성장한다던가, 뭔가
해결한다거나, 하는 결과가 없거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헤이트 수치만 쌓여 가는 것이다. 일어나는 일에 결과와 의미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복선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7. 팔리는 요소란 요소는 다 넣었는데도 폭망해버린 희대의 미스터리
 
 
사실, 2 제작자들에게 악의적인 자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단순히 옛날에나 먹힐 작품을 안이하게 만들다가 말아먹었다는 그런 단순히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안이했던 것에 불과했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미소녀들 모아놓고 대충 만담이나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팔렸기도 했고, 작화가 귀여우면 적당히 매출 나왔고, 인기작의 속편은 속편이라고 만 팔리고 있기도 했었다... , 애니메이션 업계의 고인물 총결산 같은 느낌이 든다.
고여서 썩어간지 10 년 이상 경과하고 있는데도 무식하게 때려 박았다는 느낌.
 
재능을 질투한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당사자에겐 '자신이 지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감독은 모르겠지만, 그 이외의 사람은 딱히 자기 쪽이 열등하다는 생각은 1도 없이, ‘이게 바로 케모노 프렌즈의 방식이지! 1보다 잘 나갈 게 당연한 것이다!"라고 의외로 진심으로 생각했던 게 아닐까?
아니, 분쟁이나 싸움이 없다니 말도 안되지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짐승과 사람이 동등한 상태로 사이 좋게 지낸다니 개소리죠 씨팔이라든지, 그러한 생각에서 만들면 켚2가 튀어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조차 제대로 추구한 게 아니라, 그냥 싸움이 나는 게 현실적으로 당연하잖아’ ‘틱틱거리며 인성질 하는 게 정상이지하는 것도 근본적으론 안이한 아이디어로 도망가는 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한 때는 인성질하는 게 현실적으로 보인다고 여겨지는 풍조도 있었지. 대충 10년 정도 전에 말이다. 하지만 인성질하는 부분이든 싸우는 부분이든 그리 깊게 생각하고 넣은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템플릿이라 넣고 있을 뿐 이라는 안일함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2에서는 노력이라는 요소도 제거했다. 좋든 나쁘든 요즘 유행하는 노력없이 치트로 무쌍 찍는갓세계물을 보는 듯하다.
1에서 인간인 가방은 다른 프렌즈들보다 힘도 없고 체력도 없었지만 그만큼 지혜를 짜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문제에 대처하고 해결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쁜 방향으로 신중하게 가려다 실패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청자는 노력해서 해결하는 전개를 지루하고 고구마라고 싫어하니까 치트로 대충 해결하자라던가, 타츠키 감독의 연출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음?, 라든지,
팔리는 애니메이션의 이론과 템플릿으로 알기 쉽게 만드려고
한 결과, 완성 된 것이 켚2 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결과, 2옛날에 팔린 애니메이션들의 요소가 풍성한데 왜 말아먹음?'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희생자 역할’ ‘불행 속성같은 것도 팔리는 미소녀 애니메이션들의 템플릿 일지도 모른다. 집개와 시베리아 호랑이 프렌즈의 경우에서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칸코레 애니메이션에서 키사라기가 죽은 것도 지금 생각하면 얘는 이쯤에서 죽으면 인상적일미소녀가 죽으면 분위기가 반전된다는 것도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에서 대유행 한 방법이니까 말이다.
 
당연하지만 템플릿화 한 과거 팔린 요소만을 무작정 넣는다고 해서 그게 결코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만드는 방법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타츠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고 그 보이지 않는 부분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의 템플릿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면 수요를 따라갈 수도 없을 것이다.
 
최근의 애니메이션은 "과거 팔린 요소들을 왕창 넣어 제작하면 팔릴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 잡혀 왔는지도 모른다.
공식만 따르면 일정 수 확보 같은, 그러한 방법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켚1에서 무엇을 깎아내야 할지만 생각이 지나쳐 아무도 켚2
어떻게 할 것인지를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왠지 여러 사람들이 다른 의견을 이것 저것 말한 걸 전부 담으려는 경우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못쓰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망한 회의 같은 느낌이구나. 2기 시나리오에서 받은 솔직한 느낌이다.
 
 
8. 몇 년에 한번 시대를 바꿀 크리에이터가 나타나 기준을 바꾼다.
 
 
케모노 프렌즈 1'는 재미있었고 감동적이며 원반도 엄청 팔렸지만,
솔직히 무엇이 어떻게 재미있는지 알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어쩌면 너무 참신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요소로 말하면 고전적이지만, 표현이라던가 여러 가지로 너무 참신했던 것이다.
 
그리고 설정과 캐릭터적인 측면에서도 니믐 마찬가지로 케모노 프렌즈 2'가 나오고,
케무리쿠사가 같은 시기에 나오자 비로소 사람들은 서로 비교해서 짐승케모노 프렌즈 1'의 어디가 어떻게 대단했던 지, 재미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평가와 이해라는 것은 결국 비교에 의해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비교 대상이 없이는 그저 아무튼 재밌어정도로 끝나 버리는 것이다.
 
타츠키 감독이라는 사람은 확실히 하나의 기준과 시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다.
이렇게 세계관을 구축 할 수 있고, 디테일하며, 대사 하나 하나, 배경의 작은 부분과 캐릭터들의 자연스런 행동과 행위까지 사용해서 복선을 깔고 회수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며, 대사 밖에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능숙하며,
대사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 "리얼한 인간은 이렇게 말한다"라는 대사뿐이고, 그러면서도 자연과 상황이나 설정을 시청자에게 짧은 말로알 수 있고, 어디에도 부자연함이 없다. 대사에 "이야기의 사정이나 전개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선악이나 적대, 본래는 포식자 측이라는 벽도 간단하게 지워 버린다.
이런 일은 어지간한 재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실, 악역도, 적대자도 없이
누구도 미워할 필요 없이 적대적 요소 및 전투 장면를 포함시켜주세요 라던가, 헤아트 끌어모으기 담당을 없앤다던지, 그러면서도 주인공이나 캐릭터의 성장은 포함시켜 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어도 그것을 "재미있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이라든지, 악당이라던지가 역시있어야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이다. 악역을 만들면 그 녀석 탓을 하면 되니까 문제는 안이하게 해결할 수도 있다.
 
어쩌면 켚2 입장에서 이건 불행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분기에 '케무리쿠사'가 없었다면,그렇게까지 비교되지는 않고, 그냥 적당히 팔릴 정도로 적당적당하한 재미없는 작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케무리쿠사가 있던 것을 계기로, 대부분의 사람에게 자각은 없지만 시대와 기준이 바뀌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케무리쿠사'는 배경의 작은 부분까지 봐야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거기에 더해 점점 더 디테일해지는 세부적 요소, 멋진 각본과 세계관 구축, 훌륭한 음악과 음향까지!
...이런 작품과 비교해 버리니, 필요이상으로 평가가 내려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케모프레 2기가 3년 정도만 일찍 나왔으면 그럭저럭 재미있고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그런 작품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덧붙여서 케모노 프렌즈 1기는 2 년 전 작품이다.
타츠키 감독 당신은 도데체.... BF(Before Tatsuki), AF(After Tatsuki)로 사대를 구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도마기 이전 · 마도마기 이후 같이.
 
단지, 타츠키 감독의 작품은 안이하게 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미소녀가 살벌하게 죽으면 분위기 싸해지는데'라는 식의 부분적 추출이
매우 하기 어렵다. 세계관 구축이라던지, 복선의 장치라던지, 기본적으로
귀찮은 일이라 안이하게 팔리는 요소하고는 대척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안이한 부분만 빼내고 만들자는 의도의 케모노 프렌즈2가 그렇게 말아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타츠키 감독의 작품에서 마법이나 편의주의는 거의 없다. 안이하게 대충대충 넘어가는 그런 것은 꼼수는 없다. 단지 섬세하고 치밀하게 이야기를 모아 구축해, 시청자들이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는 재미를 제시할 뿐이다.
톱 레벨의 크리에이터나, 거기에 관계되는 사람의 물건은 나는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아주 높은 수준으로 생각한다.’라는 것이 작품에서 전해진다.
 
게다가 비즈니스적인 측면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감스럽게도, "콜라보를 통해 돈을 벌자"는 점에서도 그 수준에 있어서도
'케무리쿠사'가 더 높다. 일단 제대로 '돈베'가 팔리고 있는 중이다.
잘 생각해 보자, 2를 보고 동물원에 가고 싶어지는지?
들 리가 없다? 인간중심주의가 만연하는데다, 이야기를 전개조차 증발했으니.
 
앞으로는 이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지금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손 치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대응할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은 계속 그렇게 진화하고 있었으니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텐프레 따라하면 틀림없을 거야"
이런 안일함으로는 더 이상 시청자에게 통할 수 없다, 라는 시대적 전환인 것처럼도 보인다.
여담 1 케모노 프렌즈 2의 모에 해석의 낡아빠진 것에 대해서
 
여담이지만, 또 하나 지적 해두고 싶다. 케모노 프렌즈 2 '모에'
해석이 "오래된"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이것은 10 년 정도 전에 유행했던
"오타쿠들은 이런 거 좋아하는 걸까?"라고,
오타쿠와 모에를 싫어하고 바보 취급하면서도 팔리기 때문 넣어 두는 타입의
모에라는 것을 자신은 1 화에서 느꼈다.
 
이것에 관해서는 "세대" 와 같은 생각이 든다. 단순히 타츠키 감독이
2의 제작진보다다 한층 더 젊은 것이다. 그것이 드러난 듯한 느낌이 든다.
 
타츠키 감독은 완전히 "인터넷 세대'의 감독으로 전문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를 하면서도 니코니코 동화에 10년 정도 동인 애니메이션을 게시하기를 계속해왔다.
모에 및 니코동 문화를 이해 한 세대의 크리에이터이며, 모에가 알고,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법을 안다.
 
모에에도 트렌드가있는 것 같다.
특징이 있다 못해 못해 현실에 절대 없을 것 같은 유니크한 특징의 여자 아이가 모에라고 하는 것은
역시 00년대까지 유행이 아닐까. 2의 모에가 그러한 것이라면, 1의 모에는 요즘 유행하는 어떤 역할이라기보다는 내츄럴한 성향적인 모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어쩌면, "현실의 여성"과 관계있을지도 모른다.
내 기준으로 볼 때 40대 후반 정도의 여자라고 아직도 사회적으로 "여자"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어떤 역할의 여성을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여자는 원래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 강하다고 할 수 잇겠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드라마에 속 여성 묘사의 최근 30 년 정도의 추이'
라는 주제로 쓰면 굉장히 길어질 것 같으니 생략하겠지만, 역시
만화 나 라노베, 애니메이션에서 여성의 묘사나 입지는 변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또 시대의 변화에 의해서 "모에"도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옛날의 "모에""남자 쪽에서 본 기호적으로 추출되는 모에였던 것 같은 기억이 나지만,
지금은 조금 더 안쪽에서 나오는 것을 '모에'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에바의 "카츠라기 미사토'씨는 남자다운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내 세대 기준으로 이렇게 여성스러운 사람은 없다. 보이시는 커녕...
완전 "여자" 그 자체다! 자신의 세대가 아무도 가지지 않은 여성스러움이 넘쳐서
넘친 여성성이 흘러나올 정도로 여자 잖아! 라는 느낌이다.
 
그런 세대 차이가 있으니 모에의 묘사와 해석에 차이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2 서벌 짱도 나름대로 귀엽지만, 뭔가 조금 캐릭터 만들고 있는 그런 냄새가 난다.
1의 서벌 짱은 근본적으로 아이의 순진함이라든가 '고양이의 분방함
라든지"디자인이 좋다 "가 절묘하게 합쳐진 귀여움으로 여자아이로서의 귀여움 만이 아니었다. 노린 속성이 아니고, 인간을 위한 귀여움 같은 그런 부분인 전혀 없는 부분이 귀여운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말하면, 2의 서벌 짱은 때때로 인간의 형편이나 사정에 근거한 감이 있고 동물스러움이 약하기 때문에 1의 서벌 짱 선호한다.
귀여움과 모에라는 입장에서 12는 정반대로 보인다.
 
모에 세대 차이로 본다면 케무리쿠사의 료쿠짱이 귀여워도 참고할 만하다.
기호 적으로 파악하면 안경캐라던가 세라복' 같은 요소와 부분만 보이겠지만, 본질은 거기가 아니다.
절묘한 오타쿠스러움 이라든지 막내 특성이 귀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모에란 개념은 더 복잡하고 표면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에 이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담 2 상냥한 세계와 험난한 세계의 양립이야말로 1기의 가치
 
"작품 속에서 힘든 현실을 들이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상념은
윗세대의 오타쿠, 제작자들에게 엄청나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아마 윗세대의 사람은 그런 게 있어야 작품이 리얼해 보이고 수준이 높아진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타츠키 감독은 상냥한 허구의 세계에 리얼리티를 구축한다는 발상을 선보였다.
그거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철저한 디테일그리고 인간의 묘사이다.
그 외에도 실사 영화 느낌의 화면 처리나 그려진 배경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타츠키 감독은 인간을 잘 관찰하고 있다. 얼핏 보기엔 저예산에 불과한 3D CG이지만,
사소한 동작이나 몸짓 등에서 드러나는 오싹할 정도로 리얼한 인간 그 자체의 모습에서 그는 사람을 잘 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발과 손의 묘사에서도 애착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이나 모델의 세부적인 부분에서 리얼리티를 갖게 하는것과
현실의 인간이 할 것 같은 대사자연스러운 대화를 만드는 각본의 능력에 의해서
실현시키고 있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현실의 어두운 일면을 작품에 담아서
작품에 리얼리티를 갖게 하는 방법이 필요 없다는 것의 증명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것은 말로 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행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미야자키 하야오, 데즈카 오사무와 같은 전설의 거장들조차 작품 속에서 어려운 현실을 들이대며 리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었던 것에도 알 수 있다.
잔혹함과 휴머니즘의 콘트라스트, 그것이 적어도 1900년대~00년대까지 주류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윗세대들에게는 상냥한 세계라는 개념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상냥한 세계는 선택받은 사람에게만 다정한 세계이거나, 자신들에게만 상냥한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2의 경우는 노골적으로 그런 쪽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선택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가 있고, 희생되는 아이가 있는 것이여 현실은 그래요라는 명목으로 선택받은 쪽에서도 상대를 당연한 듯 희생시켜 버리고 만다.
그리고 선택받은 아이만 기뻐하며 끝나는 것이 바로 켚2의 엔딩이다.
 
그것에 대해서 겨울왕국의 최종 보스를 구제하려고 하는이야기를 예시로 들어 보자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겨울왕국은 원작 눈의 여왕에서의 눈의 여왕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이다.
이 눈의 여왕은 악역이었다. 본래 이야기에서는 여왕에게 납치된 소년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인데 지금의 그것으로 개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악역을 구하고 용서하며, 마지막에는 모두 사이좋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마이너리티에게 은신처를 만들어주는 노케모노은 없어요라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차별이 사회를 만들고 있다.’선택받은 측에 서서 현실과 마주 하는 것
 
윗세대와 그 사람들이 만들어 온 콘텐츠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하였기에 케모노 프렌즈1 은 그 선별, 차별, 계층 구조를 없앴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2에서는 좋건 나쁘건 계층 구조가 확고한 사회적 가치관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그것이 세대차와 낡아빠졌어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점점 다양성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버려짐이 점점 진행되면서 격차가 커지고 구제하는 사람을
선별하는 세계도 보이고 있지만 아무튼 시대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이야기의 방법론으로 보자면 지금까지는 악역이 등장하는 것이나, 누군가가 노케모노가 되거나 선택되지 않음을 현실은 그래요라는 명목으로 정합성의 소멸을 정당화한다. 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왜냐하면 현실은 가혹하고 선택되지 않으면 죽으니까로 끝내버린다.
 
그렇지 않은 세계를 구축했다는 사실이 케모노 프렌즈가 추구된 가치이며
시대에 맞아떨어진 것은 아닐까.
 
궁극의 선민 계열 스토리로는 "진격의 거인"가 있지만 케모노 프렌즈로
그걸 이야기 한다면 결코 좋은 얘기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케모노 프렌즈2는 이야기의 측면에서 진격의 거인에 가까운 이야기이 되어 버린 것이다. 좋을 리가 없다.
다른 작품으로 변했다는 말이 아니다. 1의 세계를 표방한다고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진격의 거인을 이야기 한 것이 2이다. , 그렇다고 매번 누가 죽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케모노 프렌즈1이 뛰어난 것은 세계관 자체는 진격의 거인과 그다지 다르지 않고 어찌 보면 더 암울한 세계일 정도인데도 상냥한 세계를 구축한데다가 그 누구도 나쁘지 않다는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그것에 비해서 켚2는 얼마나 안이하게 시나리오를 착지시키고 있는가,
어쨌거나 ‘2’를 자칭한 이상 비판 받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여담 3 이야기에서 악당을 그리는 방식의 계보
 
점프에서 권선징악이 부정되기 시작한 것은 바람의 검심에서 부터인가, 생각해보면 꽤나 오래 되었다. "그냥 적을 물리치면 된다" "적을 물리치면 정의"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과 부정.
 
그러한 추이와 계보에서 보자면 케모노 프렌즈2의 이야기와 캐릭터 구축은 낡아빠진데다가 요즘 트렌드에 대해 고민한 느낌이 없다 고 나 자신은 느꼈다.
 
예를 들어 도로로 원작의 경우 자신의 야망을 위해 우리 아이를 요괴에게 바친다.’에서 국가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우리의 아이를 요괴에게 바친다.’ 로 변경된 것이 시대를 반영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시대엔 그런 단순한 악역이 통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도 그러한 추세가 있다.
1 ~ 3 부는 인류의 지배를 꾀하는 악당이 있었지만, 4부는 조용히 살고 싶은
이상성욕의 소유자가 라스트 보스였고, 5부는 스스로의 보신과 안정'만을 바라고 있는 존재가 라스트 보스, 7부에서는 세계 평화를 위해라는 목적을 가진 라스트 보스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시대에 맞게 동기와 악당의 인물상이 변하고 있다.
 
또한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결과 전부 최악으로 향해 전원이 불행하게 되는 우로부치식 각본
도 있다. ‘특별히 악당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탠스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하며 악역도 생생하게 묘사하며, 악역에게도 악역의 이념이 있다는 등 단순한 권선징악하고는 떨어진 개념도 존재한다.
 
 
시베리아 호랑이를 만든다 해도, ‘악역을 만들지 않는 것에 대한 의의
라든가 그것을 죽이는 의미와 중요성' 을 깊이 생각한 후 이렇게 했는지,
조금은 생각해 보았어야 한다. 단순히 악역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지!’ 라던가, ‘미쳐 버려 비스트가 된 프렌즈도 설정에 있으니 괜찮다. '라는 안이함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무고한 자를 다치게 하는 것도, 희생을 낳는 결정을 하는 것도 아이니까라는 말로 대충 넘어가려는 것 같은 안이함만을 느낀다.
 
애초에 아이도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목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렌즈들과 꾸르르가 시베리아 호랑이를 희생시키는 결단을 시킨다는 것의 의미와 의의, 의도를 제대로 깊이 생각 하긴 한건지?
게다가 그것을 아이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도대체 그것을 보고 아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건가?
솔직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져 버린다.
 
사실 사상과 사회적으로 전후 계속 전세계가 마주해 온 평범함과 사고의 정지이다. 명령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게 되어 버린다,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잔인한 일을 하고, ‘나는 나쁘지 않아라고 말해 버리며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맞서 온 것이다. 문학을 봐도 매우 알기 쉬운 악이나 단지 나쁜 짓을 하고 싶어할 뿐인 사람은 드물다.
 
제작자는 시청자보다 깊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1기에 없었던 악과 노케모노를 굳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준비하고 보여주지 않으면 의미 없지 않은가.
 
 
 
2솎아내져 떨어져나가는 아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그게 현실이지
라는 유형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세대 차이.
 
낡은 가치관에선 탈락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버리고
자신이 왕따당하지 않는 쪽에 들어가야 하며, 희생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켚2의 세계이다.
 
현대의 가치관에선 케모노는 있어도 노케모노는 없어요를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이룰 수 있을까? 라고 고심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희생하는 비정한 결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국 고통스러운 일이나 책임에서 벗어나려 하는 포기가 아닐까?
 
나 자신의 생각으로는 윗세대의 제작자들은 현실을 들이 민다.’ ‘반드시 악역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항대립 구조를 넘는 작품이 만들어져야 시대의 물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상상력이 걸요구되고 있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매우 어려운 주제로 향해 가고 있으며 지금 인류에겐 미지 영역인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2기는 그런 부분을 상상하지 않은 채, 진지하게 생각한 끝에 구축해 온 상냥한 세계를 안이한 텐프레로 부인했다.
만약 제대로 생각했다면 그 맥락을 제대로 작품에서 제시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일절 없었다는 것은 애초에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 2기를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파괴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2기 감독이 타츠키 감독이 아니라도 좋았다. 예를 들어 프리큐어 팀이 만들었다면 더욱 진지하게 사회 현상을 제시한 후에 아이에게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어른도 납득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좋았다. 설득력이 충분하다면, 싸움도, 틱틱거리는 것도, 희생이 나온다고 해도 나는 좋았다, 각본이 우로부치 겐이라도, 코바야시 야스코라도 좋았다.
 
그저 시청자의 진지함만큼 제작자도 진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쓸데없이 불타는 게 키모이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 정도로 진지하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편승을 하더라도).적당히 만든 프리큐어가 나왔다면 이러한 대비가 없는 만큼 크게 불탈 것이라고 생각한다.
뭔가가 만들어지는 것은 신뢰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시청자의 기대와 신뢰에 응하지 않았다.
아마도 애초에 부응할 생각도 없다고 많은 사람이 느꼈을 것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다.